지갑을 여는 유혹의 소나타
때로는 생각지 않게, 예기치 않았던 소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250명의 2030 젊은 층이 꼽은 넘어갈 수밖에 없는 유혹은 바로 아이였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게 있거나, 사 달라고 할 때 차마 거절을 못하고 지갑을 열게 된다는 것. 때로는 아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알아서 사다 바치는 일도 일어난단다. 아이가 없을 때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귀여운 아기 옷이나 용품을 보면 사서는 친구나 친척에게 안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주부들의 경우 홈쇼핑이나, 마트에서 귀가 솔깃해지는 할인 소식이나, 1+1 행사에도 현혹되는 일이 많다고 고백한다. 김연주(38세) 씨는 “매대 앞에 극성스러운 아줌마들이 모여서 들어갈 틈도 없을 때, 나도 흥분해서는 무언가를 꼭 사게 된다”며 강력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김영희(33세) 씨 역시 할인 제품이 문제라고. 50%까지는 적당히 참겠으나 70% 이상이 되면 무조건 지갑을 열게 된다고 한다. 고정희(35세) 씨는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매너 좋은 목소리도 충동 구매의 적이라고 꼽았다. 그 외에도 마감 임박, 특급 세일, 무료 배송 등의 문구가 지갑을 여는 주문이라는 의견이었다.
한편 이민영 씨처럼 너무 예의가 발라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시아버님께서 점심 사 주신다고 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사겠다고 말씀드리게 된다”며 시부모님이 식사하자 연락 주시는 게 겁이 날 정도라는 것. 그 외에도 시댁 행사나 명절 때면 어김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 Real Talk about Money
● “미니 홈피 꾸미는 도토리를 사며, 자기 이미지를 나타내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는 당신. 꼭 그걸 돈 들여서 사야겠어?”(진경숙, 33세)
● “아들이 사다 바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시는 시부모님, 처음 고마워하시던 그 마음 어디 가셨나요? 초심을 회복해 주세요.”(박재효, 30세)
● “자기 이제 총각 아니잖아. 조카 중학교 입학식이라고 25만원짜리 전자 사전은 너무한 거 아냐?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최정민, 33세)
● “내가 명품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돈 모아서 사는데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냐?”(김명진, 32세)
● “1+1 파격 세일이 그렇게 좋아? 마트에서 갑자기 뛰어가는 거 보면 정말 무섭다고.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그거 정말 돈 낭비야, 돈 낭비.”(김영일, 36세)
● “요리 책에 나온다고 소스를 다 살 필요 없잖아. 다음에는 별로 쓰지도 않으면서. 해바라기유고, 올리브유고, 제발 다 쓴 다음에 필요할 때 또 사면 안 될까.”(임현수, 33세)
자신보다 아이를 위해 돈을 쓴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 온 젊은 부모들은 양육에 있어서 어떤 차이를 보일까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세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부모 세대가 그러했듯 자신보다 아이들의 삶에 많은 투자를 하며 살고 있었다. 한 달에 아이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을 30만원 이상으로 답한 경우가 28%나 되는 반면 스스로를 위해서는 1%로 낮게 나타나 아이 중심적인 소비가 확인됐다.
아이를 위해서 쓰는 돈은 투자라는 의견이 84%로 압도적으로 많아, 아이를 양육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 꼭 필요한 돈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소비라고 답한 16%의 의견으로는 아직 어려서 돈을 들이는 효과가 없다거나 아이를 위해 썼다고 해도 아이는 기억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또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보다는 엄마의 허영이 섞여 있어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많지 않은 것이 이유라고 지적한 이도 있었다.
결혼 후 지갑 속 거품이 쏙 빠졌다
“명품 옷이나 가방을 샀던 게 많이 아깝죠.”(김형희, 31세) / “비싼 옷을 사는 것에 투자하는 거요. 유행 지나면 그만인데, 그 돈 모았으면 정말….”(정혜인, 32세) /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 먹었던 거요. 한 끼에 5만5천원인데, 양도 조금이어서 정말 아까웠어요.”(하주미, 35세) / “결혼할 때 혼수품을 한가득 샀던 거요. 안 쓰는 것도 많고, 괜히 남의 눈을 의식해서 무리한 거 같아요.”(이정희, 28세)
결혼은 사람을 진정한 생활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결혼하고 보니 치장하는 데 쓰는 돈이 제일 부질없다고 손꼽았던 것. 결혼 전만 해도 옷과 명품, 화장품, 액세서리 구입 등 자신을 꾸미는 데 열을 올리며 썼던 돈이 투자가 아닌 낭비라는 것에 무려 43%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남과 비교하거나 스스로를 위한 만족감은 일시적일 뿐, 긴 인생에서 남는 것은 거품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현재 쓰는 돈 중에서 아깝다고 생각되는 돈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수수료와 과태료를 지적했다. 홍영춘(35세) 씨는 “부지런만 떨면 충분히 아낄 수 있는 비용”이라며 “전기료와 수도세를 미루지 않기 위해 주의한다”고 말한다. 이은정(34세) 씨는 바쁠 때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탈 때도 가시방석에라도 앉은 기분을 느낀다고. 김영희(33세) 씨는 교통 범칙금, 특히 노란불 때 지나가다 걸릴 때는 정말 눈물 나게 돈이 아깝다는 의견이었다.
배우자 씀씀이, 유흥비가 제일 문제
배우자의 씀씀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가지다. 배우자가 쓰는 돈 중에서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 있느냐는 질문에 부어라 마셔라 하며 쓰는 술과 유흥비로 드는 돈이 30%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단란주점이라도 갔다 하면 한 달 생활비를 하루에 쓰는 건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 뒤가 게임에 쓰는 비용이라는 의견(8.4%)으로, 일회성의 재미나 유흥을 위해 즐기는 돈에 대해 강한 불만을 보였다.
디지털 제품(7.6%)을 구입하거나, 자동차를 꾸미는 데 드는 비용(6%)도 배우자에게 눈총 받는 돈. 박수임(33세)씨는 “신제품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격이 하락하는데, 그걸 굳이 비싼 가격에 사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가족을 제외한 주변인들에게 쓰는 돈에 대해서도 아깝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특히 친구들에게 쏘는 돈을 “쓸데없는 돈”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주목해야 할 듯.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주부는 “결혼 전에는 나한테 돈도 잘 쓰고 하더니 결혼 후에는 국물도 없다”며, “친구와 후배들에게 쓰는 걸 보면 속이 뒤집어진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경우도 있었다. 그 외에 조카에게 주는 용돈, 시댁에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도와드리는 것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 전문가가 보는 2030 소비 트렌드
2529세대는 감성적인 소비 성향을 보이는 반면, 3039세대는 합리적 실속 소비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직장에 첫발을 디디게 되는 2529세대는 갖고 싶은 물건에 대해서는 가격과 상관없이 과감하게 구매하는 경향을 보인다. 속옷 하나를 사더라도 색상이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야 하고, 남자도 성형 수술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등 외모에 대한 투자도 상당하다. 씀씀이가 큰 것이 사실이지만 결혼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종자돈 마련에도 열을 올린다. 은행보다는 펀드를 선호하며, 해외 펀드 등 수익이 높다면 리스크가 높은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험형이 많다.
이와는 반대로 3039세대는 저렴한 가격을 중시하는 합리적 실속 소비주의자들이다. 백화점보다는 할인 매장에서 옷을 사며, 같은 제품일 경우 가격이 싸거나 사은품을 주는 브랜드를 고르며 실속을 꼼꼼하게 따진다. 가정을 꾸리고 안정을 중요시 여기는 때이니만큼 직업 선택에 있어서는 당장의 많은 급여보다 오래갈 수 있는 안정성을 우선시한다. 자녀가 있을 경우 소비가 가장 급격하게 늘어나 자녀 학자금, 주택 구입 자금, 노후 자금 등을 위해 투자를 고르게 분산하는 경향을 보이며, 수익과 위험도가 모두 높은 상품부터 안정성이 두드러진 상품까지 고루 투자하여 늘어나는 소비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