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진 이부자리는 질병의 SOS신호
모든 병은 미리 SOS(위험신호)를 보낸다. 평소 두 눈 크게 뜨고 스스로의 몸과 행동을 잘만 관찰해도 뒤늦게 찾아낸 질병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일을 훨씬 줄일 수 있다는 게 의사들의 한결같은 충고다. 물론 병원을 찾아 각종 첨단 의료장비로 검사하는 것만큼 병을 진단하는데 정확한 방법은 없겠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검진법을 알아둔다면 꽤나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평생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는 인간에게 있어서 잠자리만큼 우리의 질환을 분명히 보여주는 지표도 흔치 않다. 잠이야말로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면역계들이 기능을 점검하고 유지·향상시키는 시간이며, 심장박동과 호흡, 근육긴장이 감소하면서 몸이 쉬는 시간이다. 코모키 수면의학연구소 신홍범 박사는 “우리는 잠을 통해 낮 동안 쌓인 신체 피로를 풀고 낮 동안 얻은 정보들을 저장하고 일부는 삭제한다”며 “마치 하루 종일 들고 다녔던 휴대폰을 집에 돌아와 충전기에 꽂아 두듯이 우리 몸도 충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잠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면 각종 질병에 시달릴 수 있고, 또 특정 질병이 수면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이부자리에 고스란히 남는다.
◇ 이부자리 엉망 만드는 수면무호흡증 이부자리는 전날 잠의 흔적이다. 잠을 자면서 얼마나 뒤척였는지, 땀은 얼마나 흘렸는지, 몇 번씩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지 등 흔히 말하는 ‘잠버릇’이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잠버릇은 단순한 습관이라기보다는 대체로 특정 질환이나 잘못된 수면태도가 굳어진 것으로 이부자리가 번잡할수록 수면이 불안정하다고 경고한다. 잠버릇이 가장 ‘험한’ 질환으로는 수면무호흡증이 단연 1순위다. 수면무호흡증이란 수면 중 1시간 당 5번 이상 무호흡인 상태이거나 7시간의 수면 동안 무호흡이 30회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잠자는 동안에도 우리는 호흡을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기도가 막혀 10초 이상씩 호흡을 못하는데 가장 큰 원인은 비만이며 가족력이 있을 경우 위험률은 2∼4배까지 높아진다. 술을 마시면 기도를 유지하는 근육인 턱끝혀근의 활동이 떨어져 더 자주 발생한다. 사람이 자다가 숨이 막히니 이부자리가 뒤엉키거나 난잡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박두흠 교수는 “코골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수면무호흡증을 동반하게 된다”며 “문제는 수면무호흡증까지 동반될 때 고혈압이나 허혈성심장질환, 심부전증, 정신장애 등 각종 합병증이 우려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 꿈처럼 행동하는 렘수면장애는 ‘공포’ 다음으로 하지불안증후군 역시 잠자리의 평온을 방해한다. 이 질환은 잠을 자려고 누우면 다리에 뭔가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이나 저림, 쑤심, 간지러운 느낌 등이 나타나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한다. 특히 주로 저녁이나 밤 시간에 더욱 심해지는데, 일시적이며 지속적으로 다리를 움직여줘야 증상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부자리가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이 증후군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신체운동을 통제하는 신경세포인 도파민 전달체계의 이상 때문이라고만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임신이나 당뇨, 알코올 중독, 심한 다이어트, 파킨슨 병, 철분 부족으로 인해 생길 수 있다. 잠을 자다가 갑자기 옆에 사람을 다리로 차거나 반복해서 다리를 움직이는 ‘주기적 사지운동장애’ 역시 하지불안증후군과 함께 대표적인 수면장애를 불러오는 증상이다. 이밖에도 수면 중 이상행동을 나타내는 질환으로는 야경증(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는 증상), 야뇨증(자면서 소변을 보는 증상), 이갈이, 몽유병(수면보행장애) 등이 흔히 알려져 있는 질환들인데 보통은 아동기 때 나타나는 일과성 장애로 치료하지 않아도 나이가 들면서 좋아진다. 주로 노인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렘수면(REM) 행동장애의 경우 공포스러운 수면장애로 꼽힌다. 이는 꿈을 꾸면서 그 상황을 실제 행동으로 그대로 옮기는 질환으로, 싸우거나 �기는 꿈을 꿀 경우 아침에 일어나보면 같이 자던 부인의 온 몸에 멍이 들어있다거나, 꿈 속에서 혀를 깨물은 한 할머니의 경우 실제로 자면서 혀를 깨물어 병원을 찾은 사례도 있다. 보통 사람은 꿈을 꾸는 시기인 ‘렘’ 수면시에 근육이 마비되지만 이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의 근육은 살아 있다. 박두흠 교수는 “꿈을 꿀 때 수의근육을 못움직이게 하는 길에 문제가 생겨서 나타나는 질환으로 대게 3분의 1이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 똑똑한 김태희는 기면증? 그렇다면 모 카드사 CF에서 ‘똑똑한 김태희’가 침대매장에서 달콤한 잠을 자며 침대를 고르는 모습은 과연 정상일까. 이에 대해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은 “백주대낮에 아무데서나 잘 자는 김태희는 기면증이나 수면이 부족한 과수면증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면증은 영화 ‘아이다호’의 리버 피닉스가 걸린 병으로 유명해졌는데, 기면증에 걸리면 밥을 먹거나 길을 걷다가 갑자기 잠이 드는 발작적 수면 증상을 보인다. 특히 10시간을 자도 피곤한 과수면증의 경우 똑바로 못눕고 입을 벌린 상태로 자거나 다리에 뭔가 끼워놓아야 안심하고 잠을 자는 사람, 특히 이불을 돌돌 말고 잘 경우 단순히 습관성이 아니라면 과수면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