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철님의 열린강의노트 (http://ipcp.edunet4u.net/~koreannote)에서
▷ 윤선도(尹善道, 1587-1671, 고산 孤山)
- 서울 생. 해남 尹씨(本貫)
- 조선 중기의 뛰어난 문인, 여러 차례 유배와 만년의 은거(隱居) 생활을 통해 시조 창작
- 26세 때 진사, 30세때 성균관 유생으로 이이첨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경원유배(31세), 이어 기장 유배 인조반정 때 유배 해제, 의금부도사
- 42세 때 별시문과 장원, 왕자(봉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됨
- 43세 때 공조좌랑, 형조정랑을 거쳐 한성 서윤 역임
- 47세 때 증광문과 급제, 예조정랑 역임
- 병자호란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덕 유배, 곧 풀려 금쇄동에 은거 (?금쇄동이 어디죠?)
- 66세 때 왕명으로 예조참의, 서인의 참모로 은거
- 71세 때 동부승지, 당쟁으로 삼사의 탄핵. 효종 승하시 복식 문제로 3년설을 주장 (남인), 서인의 세력에 밀려 삼수에 유배, 광양으로 이배됨
- <어부사시사>를 비롯한 77수의 작품을 남김.
- 문집 : [고산유고(孤山遺稿)]
- 유적지
1) 고산윤선도생가의 터(서울 종로구 예총 건물 옆) 2) 윤선도시비(광주 사직공원) : '오우가' 새김 3) 보길도 부용동(전남 해남 보길도) : 해안가의 산줄기가 마치 연꽃 모양이라 해서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노년의 은거지로 삼았다. 보길도는 그의 유배지가 아니다. 경원, 기장, 영덕, 삼수 등으로 유배를 갔었으나 노년기에 자기 스스로 이곳을 찾아 생활했던 것이다. 4) 해남윤씨 녹우당(전남 해남읍 연동리, 사적 제167호) : 조선 성종 때 지은 목조건물로 호남 지방 사대부의 대표적 건축양식
- 산중신곡(보물 제 482호)
-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 어부사시사(이 홈페이지에)
- 윤두서 자화상(국보 제240호)
- 세연정(500*375)
- 세연정 동서남북(284*210 4점)
- 세연정 옥소대(284*210)
- 세연지 복원배치도(608*456)
- 동천석실 (사진6점)
석양이 빗겨시니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비 오는데 들희 가랴 사립 닷고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월출산 높더니만 산수간 바위 아래 띠집을 짓노라 하니
고산주의(孤山主義) (이규태코너)
▲이현보와 윤선도의 '어부가'
윤선도 |
어부의 생활을 오랫 동안 지켜보면서 생활했기에 박진감이 있고. 순수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함 |
이현보 |
은일적이며 도피주의적임. 어부의 생활을 상상하고 동경하여 노래했고, 거의 한문투로 표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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